김충환 경기권역장

18년을 금융 현장에서 보내면서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집을 담보로 맡기고 연금을 받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그 집을 팔아서 배당 투자를 하는 게 나을까요?" 표면적으로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에는 사실 노후 설계의 핵심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가 놀랄 수준이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그 결과 노후 소득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의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선택지가 부상하고 있다. 국가가 보증하는 주택연금과, 배당 ETF를 중심으로 한 배당형 연금 전략이다. 두 상품은 모두 매월 현금을 지급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구조와 철학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숫자부터 보자.
2026년 기준 주택연금 평균 가입자는 72세에 주택가격 4억 원을 기준으로 월 133만 8,000원을 수령한다. 2025년 말 기준 누적 가입자는 약 15만 가구로 전체 가입률은 2%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같은 4억 원을 배당형 ETF에 투자하고 연 5%의 배당 수익률을 가정하면, 배당소득세 15.4%를 공제한 세후 월 수령액은 약 142만 원이다. 숫자만 보면 배당형이 근소하게 앞선다. 그러나 이 단순 비교가 얼마나 위험한 착시인지, 지금부터 짚어보겠다.
주택연금의 본질은 '확실성'이다.
주택연금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구조로,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해도 남은 배우자에게 연금액이 100% 그대로 지급되며, 집값보다 연금을 더 받아도 상속인에게 채무를 청구하지 않는다.
즉 국가가 장수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다. 이 점이 결정적이다. 90세, 95세까지 살아도 연금은 끊기지 않는다. 게다가 수령액은 비과세다. 배당형 연금에 붙는 배당소득세 15.4%가 없다는 것은 상당한 세후 이점이다.
2026년 개선안으로 초기보증료가 주택가격의 1.5%에서 1.0%로 인하되어 진입 비용 부담도 줄었다. 4억 원짜리 집이라면 초기보증료가 6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낮아진 셈이다. 구조가 단순하고, 금융 지식이 없어도 가입할 수 있으며, 매월 정해진 금액이 통장에 꽂힌다.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무형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수령액이 고정돼 있다. 가입 당시 확정된 금액은 물가 상승과 무관하게 평생 동일하다. 오늘의 133만 원이 10년 후에도 133만 원이라면, 실질 구매력은 매년 쪼그라든다. 연평균 물가 상승률 2.5%를 가정하면 10년 후 그 133만 원의 실질 가치는 약 104만 원으로 떨어진다. 집도 담보로 묶이기 때문에 자녀에게 온전한 상속이 어렵고, 중도에 해지하면 복잡한 절차와 비용이 뒤따른다.
배당형 연금의 본질은 '유연성'이다.
배당형 연금 전략이란 SCHD, JEPI 같은 배당 ETF 또는 국내 고배당 ETF를 통해 매월 또는 매 분기 배당금을 생활비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SCHD는 2011년 상장 이래 한 번도 배당액이 하락하지 않았으며, 10년 동안 연간 배당 성장률이 평균 11%에 달했다.이것이 배당형 연금의 핵심 매력이다. 배당이 성장한다는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령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물가 상승에 대응하는 구조가 내재돼 있다.
1억 원을 투자했을 때 연 5% 수익률 기준으로 세전 약 500만 원, 월 평균 42만 원 수령이 가능하다. 원금이 유지되는 한 배당은 계속되며, 원금 자체는 자녀에게 상속할 수도 있다. 중도에 자금이 필요하면 일부를 매도하는 것도 자유롭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시장 위험을 본인이 부담한다. SCHD의 최근 5년 주가 상승률은 약 28.3%로 S&P 500의 82.4%에 비해 낮다. JEPI는 총보수 0.35%에 30일 SEC 수익률 7%대를 유지하지만, 커버드콜 전략 특성상 강세장에서 주가 상승 수혜가 제한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쇼크처럼 시장 전체가 흔들리면 배당도 삭감될 수 있다. 게다가 세금이 있다. 미국 ETF 배당에는 15% 원천징수가 먼저 떼이고,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초과하면 종합소득세 대상이 된다. '월 배당이 통장에 들어온다'는 느낌과 '세후 실수령'은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옳은가.
18년 동안 금융 현장에서 내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원칙이 있다. 투자는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질문을 찾는 과정이다. 주택연금과 배당형 연금 중 어느 것이 더 낫다는 단일 답은 없다. 본인의 자산 구조, 건강 상태, 가족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금융 지식의 수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금융 지식이 부족하고, 시장 변동에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성향이라면 주택연금이 낫다. 매월 133만 원이 꽂히는 확실성이 심리적 안정을 준다. 반면 금융 시장을 이해하고, 본인만의 포트폴리오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배당형 연금이 훨씬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누군가가 "요즘 배당 ETF 수익률이 7%래요"라는 말 한마디에 4억짜리 집을 팔아 투자하겠다고 결심하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 분께 배당형 연금이 아니라 주택연금을 권한다. 시장을 모른 채 고수익에 매달리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두 선택지 모두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이 상품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 리스크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선택이 가능하다. 주택연금이든 배당형 연금이든, 이해하지 못한 채 선택한 노후 설계는 결국 본인의 노후를 위협한다.
노후는 두 번 준비할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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