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정 경기중부거점장
[사이버타임즈(cybertimes)=이선정 경기중부거점장]

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문서가 있다. 바로 ‘정관’이다.
대부분의 대표들은 이 정관을 설립 절차의 일부로 인식한다. 등기를 마치기 위해 필요한 서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관은 대개 표준 양식을 기반으로 빠르게 작성되고, 큰 고민 없이 넘어간다. 일종의 ‘형식적 통과 과정’으로 처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이미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정관은 단순히 설립을 위한 문서가 아니라,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를 정하는 기준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사업의 방향이나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이른바 ‘복붙 정관’으로 시작한다. 초기에는 실제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한계를 체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운영하면서’ 터진다.
설립 초기에는 지분 구조도 단순하고 의사결정도 빠르다. 대표들 간 신뢰도 높기 때문에 정관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다. 이 시기에는 정관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회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대표가 둘 이상인 경우, 처음에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뉘지만 어느 시점부터 의사결정의 방향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투자 유치나 사업 확장 같은 중요한 선택 앞에서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의결 기준이나 최종 결정 구조가 명확하지 않다면, 단순한 의견 차이는 곧 권한 다툼으로 번진다.
주주 간 관계도 비슷하다. 초기에는 ‘함께 한다’는 의미가 크지만, 회사 가치가 올라가고 배당이나 투자 이슈가 생기면 지분은 곧 이해관계가 된다. 주식 양도 제한이나 우선매수권 같은 기본 장치가 없다면, 예상하지 못한 외부인이 주주로 들어오거나 내부 갈등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임원 보수와 이익 배분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수익이 발생하는 순간 기준이 없으면 반드시 충돌이 생긴다. 이는 단순한 금액 문제가 아니라 기여도, 권한, 기대가 얽힌 영역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협의는 반복되고, 결국 감정의 문제로 넘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다, 처음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정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 상태가 유지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순간, 기준의 부재가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관계와 금액, 구조가 모두 커진 이후다. 정관의 리스크는 늦게 드러나지만, 한 번 드러나면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대표들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숨은 리스크’다.
많은 경우 ‘없는 조항’을 위험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잘못 설계된 조항’이다.
예를 들어 의결권 규정이 실제 지분 구조와 맞지 않는 경우, 특정 안건이 과도하게 막히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쉽게 통과될 수 있다. 그 결과 의사결정이 정지되거나 통제권이 예상과 다르게 흔들릴 수 있다.
임원 관련 조항도 마찬가지다. 실제 운영에서는 역할과 권한이 나뉘어 있는데, 정관상 모든 임원이 동일한 권한을 가지는 구조라면 평소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갈등이 발생하는 순간 그 조항이 그대로 분쟁의 근거가 된다. 결국 현실과 문서의 괴리가 충돌의 핵심이 된다.
더 위험한 경우는 사업과 맞지 않는 구조다. 초기에는 단순한 형태로 시작했지만, 이후 투자나 확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관은 발목을 잡는다. 지분 구조를 유연하게 설계할 수 없거나 필요한 장치가 빠져 있다면, 새로운 이해관계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 의도된 것이 아니다. “일단 문제 없겠지”라는 판단이나 표준 양식의 반복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더 발견하기 어렵고, 검토 대상에서도 쉽게 빠진다.
결국 정관의 리스크는 단순하지 않다. 없는 것은 보이지만, 잘못된 것은 잘 보이지 않고 그 차이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많은 대표들이 이렇게 말한다. “문제 생기면 그때 바꾸면 되죠.”
틀린 말은 아니다. 정관은 변경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언제 바꾸느냐’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변경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그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분쟁이 되기도 한다. 반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 이해관계가 단순할 때의 설계는 훨씬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정관의 역할은 명확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참고하는 문서가 아니라, 애초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장치다. 정관을 단순한 법적 문서로 보면 그 역할은 절반에 그친다. 반대로 회사의 운영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를 담은 ‘경영 설계도’로 바라보면 접근 자체가 달라진다. 발생 가능한 상황과 이해관계를 미리 가정하고, 그에 맞는 기준을 설계하게 된다.
사업은 결국 사람과 돈이 얽히면서 움직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정관은 바로 그 구조를 다루는 문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분명해진다.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정관과 실제로 작동하는 정관의 차이는 결국 회사의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지금 정관을 다시 꺼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잘 작성되었는지가 아니라, 현재 사업과 맞는지, 앞으로의 방향까지 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정관은 한 번 만들고 끝나는 문서가 아니다. 회사의 성장에 맞춰 계속 점검되고 수정되어야 하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같다. 지금의 편의가 아니라, 앞으로의 운영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것. 그것이 정관을 제대로 활용하는 첫 번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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