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경제전문기자
[사이버타임즈(cybertimes)=이민희 경제전문기자]

지수는 올랐는데 마음은 왜 불안한가?
요즘 상담을 다니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코스피가 8천을 넘었다는데 왜 아직도 저축 얘기를 하냐는 말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8천 포인트를 돌파했을 때만 해도 시장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작 요즘 고객들의 얼굴을 보면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왜일까. 지수는 높아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서킷브레이커가 일상이 된 증시
하루 걸러 사이드카가 발동되고 10% 급등락은 우리 증시에서 일상이다. 국내 증시가 대외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마치 롤로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다. 3월 대폭락에서 시작해 4월 급등락, 5~6월 급등 랠리, 6월 말 재급락, 7월 재차 변동성까지, 다섯 달 가까이 지수가 쉬지 않고 출렁인 셈이다. 이쯤 되면 지수를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고객들의 하소연이 이해가 간다.
두 종목이 흔드는 지수, 그 안의 진짜 그림
지난 칼럼에서 코스피 3천 시대를 언급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지금은 그 표현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시장이 달라졌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 4천 3백대에서 출발해 8천 4백대까지 두 배 가까이 오르는 유례없는 상승을 보였다. 문제는 이 상승을 이끈 주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종목이라는 점이다. 두 종목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전체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다 보니, 이 두 종목이 흔들리면 지수 전체가 함께 출렁인다. 지수만 보면 여전히 높은 자리에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루하루의 변동폭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커진 상태다.
지수는 올라도 계좌는 웃지 못한 사람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코스피가 8천, 9천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상승은 처음부터 끝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두 종목이 이끈 랠리였다.
같은 기간 같은 시장 안에서도 누구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누구는 계좌가 반토막 나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벌어진 셈이다. 코스피 지수 하나만 보고 시장 전체가 좋다고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중소형주나 바이오, 헬스케어 종목에 자산이 몰려 있는 고객이라면 지수 상승이라는 겉모습과 실제 계좌 잔고 사이의 괴리를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시세창에 끌려다니는 일상
이런 장세는 단순히 투자자산의 수익률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고객들이 요즘 이런 얘기를 한다. 뉴스를 보는 게 무섭다, 장이 열리기 전부터 마음이 불편하다, 하루 종일 시세창만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자산이 늘어난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겨야 할 텐데, 오히려 일상생활 자체가 시장 변동성에 끌려다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투자 판단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급락한 날 겁에 질려 손절하고, 반등한 날 뒤늦게 따라 들어가는 패턴이 반복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투자와 저축, 애초에 다른 역할
바로 이 지점에서 저축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진다. 투자자산과 저축자산은 애초에 역할이 다르다. 투자는 시간을 들여 자산을 불리는 도구이고, 저축은 필요한 순간에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도구다. 지금처럼 하루 사이에도 5퍼센트씩 오르내리는 장세에서는 이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목돈이 필요한 시점이 하필 시장이 급락한 날이라면, 투자자산을 깨는 순간 손실이 그대로 확정된다. 반면 별도로 마련해 둔 저축이 있다면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계좌를 깬 직장인
실제로 상담했던 한 30대 직장인 고객의 사례가 있다. 여유자금 대부분을 주식과 펀드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전세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몇 천만 원의 인상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하필 그 시점이 시장이 크게 흔들리던 때였다. 결국 손실을 감수하고 투자자산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일정 부분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저축으로 남겨두었다면, 굳이 손실을 확정하지 않고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장은 내 자금 사정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운 사례였다.
월급이 안정적이라고 유동자금이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직장인일수록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이다 보니 굳이 저축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소득이 안정적이라는 것과 유동자금이 확보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내 집 마련을 위한 계약금이나 잔금, 전세자금 인상분, 결혼자금처럼 정해진 시점에 목돈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는 그 순간이 하필 시장이 나쁜 타이밍과 겹칠 확률도 함께 높아진다.
저축은 수익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일
그래서 저축은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한다.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순간에 투자자산을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처분해야 하는 상황을 막아주는 것이 저축의 진짜 역할이다. 이 역할은 지수가 아무리 높아져도, 아무리 자주 사이드카가 발동돼도 대체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처럼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출렁일 때일수록 저축과 투자의 비중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수익률에 취해 유동성을 챙기지 못하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웃는 사람이 아니라 손해를 확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지수와 마음의 평안은 별개다
지수가 높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과 내 마음이 편안하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흔들리는 장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재무구조를 갖추는 것, 주식창을 자주 들여다 보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 저축이 필요한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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