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환 경기권역장

부동산 정책을 오래 지켜본 사람은 안다. 정부가 '공급 대책'을 꺼내드는 시점은 항상 집값이 이미 한참 오른 뒤다. 그리고 그 대책이 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점은 또 한참 후다. 이 구조적 시차가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2024년 8월 8일, 전 정부는 이른바 '8.8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국토교통부 김헌정 주택정책관은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핵심 내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재건축·재개발 기간을 통상 15년에서 최대 9년으로 단축하겠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그린벨트에서 8만 호를 공급하겠다(당해 5만, 이듬해 3만). LH의 신축 매입 임대를 기존 연 3~4만 채에서 5만 채 이상으로 늘리고 서울은 무제한 매입하겠다. 그것이 약속이었다.
그 약속의 전제에는 한 가지 중요한 인정이 있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분양 단계까지 5~6년은 걸릴 것"이라는 말이었다. 재건축 기간 단축도 15년에서 9년이지, 즉시 공급이 아니다. 입지 결정에만 석 달이 필요하고, 관련 법안 8개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공급 대책의 가장 정직한 타임라인은 '2년 뒤가 아니라 5~9년 뒤'다.
문제는 수요와 감정이 그 타임라인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집을 사야 하는 실수요자에게 '9년 후 재건축 아파트가 공급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신축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확인으로 읽히기도 한다. 2024년 당시 국토부 관계자도 "공급이 실질적으로 실감나게 된다는 시그널을 계속 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정책의 효과가 가격에 반영되려면 시장의 '신뢰'가 먼저여야 하는데, 신뢰는 수치가 아니라 타이밍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2026년 현재 숫자로 확인해보면 시차의 냉혹함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86주 연속 상승하며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올해 수도권 입주 예정은 약 10만 5,000가구로, 최근 10년 평균인 약 18만 가구 대비 40% 이상 적다. 공급 절벽의 원인이 3~4년 전의 인허가 부진에 있다는 분석은 사실로 뒷받침된다. 재건축·재개발 착공이 2024~2025년에 속도를 낸다 해도 그 물량이 입주로 이어지는 건 2027~2030년이다.
한 가지 추가로 짚어야 할 점이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반복적으로 물었던 질문이 있다. "왜 미리 준비하지 않았느냐?" 주택정책관은 "2만 호를 생각했는데 집값 상승세가 기대 이상이어서 8만 호로 늘렸다"고 했다. 이 말은 솔직하지만 동시에 문제적이다.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을 사후적으로 공급 확대로 메우는 방식이라면, 그 공급이 완료될 때쯤 시장은 또 다른 국면에 있을 수 있다. 지방 준공 미분양이 1만 3,000채를 넘고 있는 것도 같은 구조적 실패의 반대편 얼굴이다. 서울은 모자라고 지방은 남는다. 공급의 양이 아니라 공급의 위치와 타이밍이 진짜 문제다.
필자가 이 인터뷰에서 가장 주목한 발언은 한국 주택정책의 가장 오래된 딜레마를 담은 이 한 마디였다. "정책을 견조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주택정책관 본인이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2024년에도 나왔고, 아마 그 이전에도 나왔을 것이며, 현 정부에서도 비슷한 말이 반복되고 있다. '일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일관성이 없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금융 관점에서 개인 투자자와 실수요자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정부 발표를 타이밍으로 삼지 말라. 공급 대책 발표 직후 매수에 나서는 것은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는 판단이 아니라 '공급이 부족한 지금 사놓겠다'는 판단이어야 한다. 그 두 판단은 결과가 같아 보여도 리스크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정책 효과에 베팅하는 것이고, 후자는 실수요 기반의 구조적 판단이다. 지금처럼 정책 일관성이 낮고 시장 변동성이 높을 때일수록 실수요 중심, 핵심 입지 중심, 과도한 레버리지 배제가 원칙이다.
부동산 공급 대책이 진짜 효과를 내려면 발표 시점이 아닌 착공 시점부터가 기산점이고, 완공·입주 이후에야 가격에 반영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시장도, 언론도, 때로는 정책 당국도 잊는 것이 반복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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