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하 기자

병원 창구에서 영수증을 받아 사진을 찍는 수고를 없애겠다며 시작한 실손24가 시행 2년을 맞았다. 그러나 9월 28일 기준 연계 의료기관은 전체의 47.7%에 그친다. 금융당국이 과태료 카드를 꺼냈지만, 제재만으로 서류 없는 청구가 일상이 될지는 의문이다.
금융위원회가 9월 30일 점검회의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9월 28일 기준 실손24에 연계된 의료기관은 5만340곳으로 전체 10만5643곳의 47.7%다. 병원·보건소(1단계)는 60.0%, 의원·약국(2단계)은 46.7%다. 가입자는 약 521만 명, 누적 청구는 461만 건이다.
이용 규모는 더 작다. 보험개발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박민규 의원실에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7월 말 실손24 가입자는 453만여 명으로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3479만여 명의 13.0%였다. 7월 한 달 실손24로 들어온 청구는 45만8388건으로, 지난해 실손보험 월평균 청구 건수(1001만8680건)의 4.6%에 그쳤다.
같은 자료에서 기관 종별 편차도 컸다. 7월 말 기준 한방병원 2.7%, 요양병원 5.2%, 정신병원 6.1%, 치과의원 10.0%, 의원 18.1%였다. 금융위 집계와는 시점과 방식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시민이 일상적으로 찾는 동네 병·의원에서 서류 없는 청구가 되지 않으면 제도의 효용은 체감되기 어렵다.
금융위도 이를 인정한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연계율이 47% 수준에 머물러 국민이 직접적인 효용을 느끼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역별 수치다. 7월 말 기준 서울은 요양기관 연계율이 36.0%로 가장 낮았는데 실손24 청구율은 8.0%로 가장 높았다. 연계율과 이용률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금융위가 4월 점검회의에서 꼽은 이유는 세 가지다. 의원급 다수가 쓰는 대형 전자의무기록(EMR) 업체가 경제적 이익 제공을 요구하며 참여를 거부하고 있고, 치과처럼 실손 청구 대상이 적은 과목은 병원 차원의 연계 유인이 낮으며, 소비자 인지도와 편의성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제도 설계의 공백도 있다. 지난해 5월 국회 자료를 인용한 서울경제 보도는 의료기관의 참여가 의무사항이지만 과태료 같은 제재가 없어 사실상 병원 자율에 맡겨져 있다고 짚었다. 금융위는 이번 점검회의에서 미참여 의료기관과 공공병원에 참여가 법상 의무임을 알리는 공문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비용 문제도 얽혀 있다. 청구 전산 시스템의 구축·운영 비용은 보험업법에 따라 보험회사가 부담한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보험업계는 약 1100억 원을 부담하고 있는데 병원 측은 이를 불충분하다고 봤고, 보험업계는 추가 부담이 보험원가 상승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금융위는 9월 30일 의료기관과 EMR 업체의 자발적 협조만으로는 연계율을 높이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정당한 사유 없는 미연계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연말까지 연계율 80~90%다. 아직은 법 개정 '검토' 단계이며, 매일신문은 관련 개정안 논의가 11월에 시작된다고 전했다.
금융위의 논리는 분명하다. 실손보험은 약 4천만 명이 가입한 제2의 건강보험이고, 청구 전산화는 매년 수천억 원에 달하는 미청구 보험금을 돌려줄 수 있는 사실상의 공적 인프라라는 것이다.
의료계의 시각은 다르다. 매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의료계의 한 단체는 과태료 추진을 철회하고 자율 참여를 이끌 지원책부터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실손보험은 보험사와 가입자 사이의 민간 계약인데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에 연계를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EMR 연동 개발비와 유지보수 비용, 환자 정보가 한곳에 쌓이는 데 대한 우려도 참여를 미루는 이유로 꼽혔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참여가 법상 의무인데 제재 없이 방치해 왔다면 그 자체가 정책의 공백이다. 반대로 비용 분담 기준이 불투명한 채 제재가 먼저 나가면 반발만 키울 수 있다.
제재에 앞서 갖춰야 할 조건은 세 가지다.
정부는 10월 TV·라디오·병원 키오스크 홍보와 11월 영상 공모전을 예고했다. 필요한 일이지만, 10월 7일 네이버 지도에 실손24 필터가 생긴 것처럼 진료 전에 연계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는 정보 환경을 정착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소비자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진료 전에 가는 병원과 약국이 연계 기관인지 확인하면 된다. 지난 10월 7일부터 네이버 지도에서 실손24 필터로 연계 병·의원을 골라 볼 수 있고, 실손24 앱에서도 검색된다. 연계되지 않았다고 보험금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영수증과 세부산정내역서 등을 받아 보험사 앱에 올리는 기존 방식으로 청구하면 된다.
놓치기 쉬운 것은 기한이다. 상법상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고, 기산점은 원칙적으로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다. 서류가 귀찮아 미룬 소액 진료비도 3년 안에는 청구해야 한다. 청구의 주체는 병원이 아니라 보험 가입자 본인이다. 실손24는 서류를 대신 떼어 주는 시스템일 뿐, 청구 버튼은 소비자가 눌러야 한다. 연계율이 절반에 못 미치는 지금은, 제도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소비자가 가는 곳부터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서류 없는 청구는 병원의 선의에 기댈 일이 아니라 제도 설계로 풀어야 할 과제다. 연말 80~90% 목표가 과태료라는 채찍으로 달성될지, 비용 분담과 정보 보호라는 현실적 해법이 함께 마련될지는 11월 법 개정 논의가 가늠할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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