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진 경기서부거점장
[사이버타임즈(cybertimes)=오수진 경기서부거점장]

며칠 전, 한 가정의 거실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평소 말수가 적던 중학생 아들이 TV 속 비트박스 배틀을 보며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과 리듬이라는 매개가 등장하자 멈춰 있던 대화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처럼 보이지만, 이 장면은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이 어디에서 막히고 또 어디에서 다시 열리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최근 교육과 심리 분야에서는 청소년기의 정서 표현 방식이 언어 중심에서 감각과 매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음악과 리듬, 영상과 같은 감각적 경험이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청소년기를 몸과 마음, 관계가 동시에 크게 변화하는 전환기로 설명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혼란과 긴장,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함께 경험한다. 따라서 사춘기 자녀의 침묵이나 예민한 반응은 관계의 단절 이라기보다, 자신을 형성해 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음악은 하나의 다정한 통로가 된다. 리듬과 멜로디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조용히 밖으로 꺼내어 주는 또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강한 비트는 가슴 속에 쌓인 에너지를 풀어주고, 잔잔한 선율은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담아낸다. 음악은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대신해 이야기한다.
음악치료 현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자주 관찰된다. 처음에는 말을 아끼던 아이들이 리듬을 두드리고, 노래를 고르고, 가사를 따라 부르며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꺼내 놓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알아가며,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결국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 문제는 대화의 부족이 아니라 표현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 세대가 말로 설명하는 데 익숙하다면, 아이들은 음악과 리듬, 이미지와 같은 감각을 통해 마음을 표현한다. 그렇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이 노래가 좋아?”라고 가볍게 물어보는 순간은 단순한 관심 표현을 넘어 아이의 마음 가까이로 한 걸음 다가가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사춘기는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성장의 시기다. 이 시기를 건너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알려주는 어른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어른이다. 그리고 그 표현의 시작은 반드시 말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리듬으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 아이에게 질문을 건네기보다 함께 들을 노래 한 곡을 조용히 틀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그 노래 한 곡이 부모와 아이 사이에 잠시 멀어져 있던 마음을 다시 잇는 조용한 시작이 되길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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